2013/02/26 20:39

제인 오스틴, <엠마>를 통해 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투적인글읽기


제인 오스틴의 『엠는 주인공인 엠마 우드하우스가 자신의 편견, 허영심, 위선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세기 초에 쓰인 이 작품은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당대의 사회 모습과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로서의 귀중한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특히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을 파급시킨 주무대인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 당시 분화되고 있던 계급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작중 주인공인 엠마 우드하우스는 젠트리 층으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과 그로 인해 상류층의 문화를 누릴 수 있음을 명예롭게 여기는 인물이다.

한편 이처럼 상류층으로서의 자각을 가진 엠마는 하류층에 대한
봉사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생아인 해리엇 스미스에 대한 엠마의 감정을 살펴보자.

반드시 지원을 해 주어야 했다. 저 부드러운 푸른 눈과 저 모든 타고난 아름다움들이 하이베리의 하층사회나 그 인척들한테 낭비되어서는 안되었다. 바로 이 몸이 이 아이를 알아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며 자기 위상으로 보나 시간 여유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딱 맞는 일거리였다.

엠마는 해리엇의 진정한 친구는 아니었다
. ‘해리엇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엠마의 애정은 실로 그녀의 위상에 걸 맞는것으로, 우정보다는 동정심에 가까운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동정심은 당시의 상류층이 마땅히 지녀야 했던 덕목,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 로마의 평민은 이른 바 피보호자(클리엔테이지, Clientes)’로서 귀족인 보호자(페트로누스, Patronus)’와 신의(Fides)로써 맺어져 있었다. 보호자는 피보호자를 대신해 법정에 나가 변호를 해야 했으며,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움을 주어야 했다. 이에 대해 피보호자는 보호자를 따라 종군하는 등의 경제적 행위로 보답했다.

한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중세의 군사적 전통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 봉건제가 정착할 무렵 토지 소유자들과 전사 집단은 귀족이라는 하나의 신분으로 통합하게 되는데, 989년의 샤루 공의회는 이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여 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였다. 이때의 결의에 따라 전개된 신의 평화(Paix de Dieu)’ 운동은 난폭한 전사들을 서서히 신의 군대로 순화하였고, 귀족들은 자의적인 폭행과 약탈을 중지하고 남는 힘은 가난한 사람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데 쓰게 되었다. 나아가 이와 같은 귀족의 문화는 기사도(Chivalry)’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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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부터는 봉토 세습화, 관직 매입 등을 통해 귀족 대열에 합류하는 가문이 증가하는 가운데, 기사도가 더욱 강조되었다. 이는 신흥 귀족들의 내면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것으로써, 정통 귀족 생활의 형식주의, 출생, 생활양식보다는 정신적 고귀함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이해함에 있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상류층의 하류층에 대한
의무만을 명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권에는 보상이 따르고, 그 특권은 도덕적 의무에 근거한다는 것으로, 상류층이라면 으레 특권적 보상을 누리며 산다는 것, 그것이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강요해서라도 그것들을 취해야 한다는 것, 그 대신 일정한 도덕적 책무를 이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엠마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 엠마 역시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정신에 철저히 입각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서 엠마는 자신보다 처지가 좋지 않은 해리엇 스미스나, 베이츠 가문에 대해 봉사심내지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상류층으로서의 특권, 지위, 교양 등도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제인 오스틴이 작품을 통해 당대로선 주체적인 여성을 그리는 데에는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계급 의식을 완벽히 극복해낼 수는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 2012. 7. 8.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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